인식론에 있어서의 근대 합리론과 경험론의 근본적인 차이






    인식론 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진리의 기준 양식에 대한 철학의 분야를 말한다.
    '근대'라는 (현 상태로 분류되어 있는 시대 구분에 따라) 시간 영역으로 넘어오면서 인간의 역사와 그 역사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사상, 중합적인 종합 개성체의 인식은 급변하는 변화를 겪게 된다. 그 가장 근본적인 근간이 되었던 종교의 분열과 그 절대성의 의심은 얼마 가지 않아 과도기적인 절대 왕정을 거의 중세 시대의 절대적이었던 종교와 비교될 정도로 강화시키게 되었으며 그들은 또한 역사의 한 부분으로서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운명을 진행시켰다. 생산성의 발달과 그 당연한 결과인 상업의 발달은 경제 가치의 유동성과 과도한 잉여 자산을 낳았으며 이것은 기존의 (어찌 보면 그 자체를 가능하게 했던) 체제와 충돌하게 되며,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전체적인 문화 수준은 그 인식의 정도에서 과거 어떤 시대보다도 월등한 발전을 이룩하게 된다. 근대 정신은 급변하는 과도기적 상황에서 과거의 전통에 대한 단절과 또 다른 체계, 그것도 전혀 새로운 정신체계를 구성해야 하는 책임을 스스로 떠맡게 된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하에서 인식론의 근본을 이루며 근대 철학의 시작을 알렸던 철학 사조가 경험론과 합리론이다. 물론, 이 두 가지 철학 사조는 근대에 와서야 비로소 생겨난 전혀 새로운 철학 사조는 아니다.
    합리론의 경우 그 이성 존중의 전통은 플라톤에 이어져 있으며, 경험론의 경우, 그 우연성과 상대적인 가치 판단 기준은 소피스트들에 그 맥을 잇고 있다. 지금부터 먼저 합리론으로부터 그들의 중요 근간을 이루는 인물들과 그들의 논리를 통해 두 가지 철학 사조의 차이점과 그들의 변천 과정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합리론은 데카르트로부터 그 시작을 잡고 있으며 이 철학의 특징은 오로지 이성 추리에 의하여 보편적이고 논리적이며 직관적으로 확실한 형이상학의 전제로부터 개개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도출하려 한 점이다. 합리론은 자신의 원천을 자연에 대한 수학적 고찰에 가진다. 말하자면 수학의 원칙은 자연의 일부분이므로 수학에 유사한 철학적 고찰이 마찬가지로 자연에 적용 가능하다는 견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합리론의 또 다른 근거는 플라톤의 철학에 있다. 그에 따르면 이데아에 대한 인식은 감각적 사물을 바라볼 때의 회상 활동에 지나지 않는다. 이데아는 선험적이며 본유적이다. 본유적인 이데아는 영혼의 본질을 가장 순수하게 표현하는 정신적 활동, 즉 사유에 의해서만 의식할 수 있게 된다. 곧, 논리적, 수학적인 사유를 통해서만 이데아가 도출되는 것이다. 데카르트에게 있어서 주관은 철학의 시작점이며 그의 이래로 주관은 이 중심적인 입장을 다시 상실하게 된다. 데카르트의 철학의 시작은 회의로 부터 시작된다. 모든 의식이나 진리는 의심되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이상에 대한 왜곡의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방법적 회의' 과정을 통해서 데카르트는 마침내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존재를 발견하게 된다. 모든 표상을 내게서 제거 한다면 결국은 의심하는 존재인 나 자신은 남는 것이다. 이것이 합리론의 시작점인 최고의 확실성, 진리의 시작점인 것이다.

    전반적으로 합리론자들에게 있어서는 모든 사물이나 현상은 단순화된 어떠한 중핵적인 기본 원리가 전제되어 그것에서부터 파생되어 나가는 양식으로 사물에 대한 인식을 전개하게 된다. 합리론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데카르트 자신은 정신적인 실체와 물질적인 실체의 두 가지 부문으로 현상을 파악하려 했으나 정신적 실체와 물질적인 실체가 이원적으로 존재한다는 가정은 '인간'이라는 (넓게 보아서 전반적인 동물) 존재에 있어서 그 문제점이 드러나게 된다. 의식하는 실체와 연장으로 공간을 점유하는 물질적 실체가 공존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데카르트는 뇌에서의 유일한 기제(奇蹄) 기관인 송과선을 영혼을 의해 할당했으나 역시 옹색한 답변임을 모면할 수 없었다. 여기에 대해 그 뒤를 잇는 스피노자는 일원론을 주장했다. 사물은 '신'의 일부분이 드러난 것이며 모든 것은 그 부분이라는 것이 스피노자의 이론의 중심인데 이로서 스피노자는 신은 곧 자연이라는 범신론을 주장하게 된다. 이에 반해 또 다른 합리론자이며 저명한 수학자이자 신학자이기도 한 라이프니찌는 단자(Monad)를 통한 다원론을 주장하였다. 단자들은 최고의 단자인 '신'에서부터 가장 하급한 단자인 물질의 단자까지 여러 가지 종류가 일정한 계층을 이루고 있다는 주장인데 결국 이들의 주장은 사물의 근간을 추적했다는 것으로 종합될 수 있다.

    이러한 대륙의 합리론에 반해 주로 영국을 중심으로 전개된 철학이 경험론이다. 경험론의 창시자로는 베이컨을 들 수 있다. 이들에게 있어서는 모든 지식의 체계는 탄생 이후의 경험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전제 하에 그 인식의 개념의 한계와 내용을 정의 하는 것이 주요 활동 사항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방법은 귀납법적으로 전개되는 인식력의 획득 과정을 중시하고 있으며 베이컨 자신은 이러한 '인식'의 명징성을 위해 '우상'에서 먼저 벗어나야 함을 경고하고있다. 선입관에 사로 잡힌다면 '경험'해야 할 사물의 본질적인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베이컨에 의하면 이 귀납법이 도달하는 결과는 '형상'. 즉, 보편 개념 내지는 법칙에 대한 인식이다. 그는 이 형상이 현상의 본질이나 번성을 형성한다고 생각함으로써 중세의 플라톤화 한 견해에 기우는 경향을 지닌다. 그는 귀납법적인 방법을 적용할 수 없음으로 수학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겼으며 종교 또한 배제하였다.
    이러한 경험론은 국가론으로 유명한 홉스를 거쳐 존 로크에 이르게 된다. 로크의 업적은 다음과 같이 서술된다. 그는 분명하게 인식, 특히 형이상학적인 인식의 운동에 관한 비판적인 인식론의 의미를 암시하였으며 인식을 비판하였다. 로크의 사유의 중심점에는 인간이 위치한다. 한마디로 로크의 인식론은 인식 심리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에게 있어서는 인식 능력만이 본유적인 것이며 인식 자체는 획득된 것이다. 영혼이 본유적인 것이라면 어찌하여 인간은 자신에게 본유하는 진리에 대한 아무런 의식도 소유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또한, 로크는 특정한 '정신적 문제들'을 타당한 것으로 만들기 때문에 영혼은 백지 (tabular Rasa)가 아니고 모든 증명이 목표로 삼는 의식이다. 따라서 문제의 관점이 변질된다. 전술한 바와 같이 합리론은 '본유 관념'이 본유적이지 않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련의 로크의 사유의 경향에서 결국은 순수한 경험론의 난점이 나타난다. 참다운 지식이 합리적인 원리는 바탕으로 획득 가능하다면 (로크에 의하면 참다운 지식은 오직 직관과 증명에 의해서만 가능하므로) 순수한 경험론이 일관성 있게 성취될 수 없다는것이 암시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경험 불가능한것에 대한 존재의 성질을 논거로 삼아 자신이 출발한 경험론의 토대에 대한 모순을 범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흄에 이르게 되면 경험론은 인식 자체에 대한 극단적인 회의 빠져 결국은 경험의 토대가 되는 인식의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게 되어 자기 모순에 빠지게 된다.

    지금까지 살펴 본 바와 같이 합리론과 경험론은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지고 발전하였으며 결국은 치우친 의견의 모순으로 인해 합리론은 지나친 주관주의의 자기로의 침잠을, 경험론은 경험 자체의 가능성을 회의함으로써 인식의 계에 대한 모순된 회의를 초래 했다. 이것은 마치 헤겔의 변증법과 유사하게 하나의 주제에 대한 반주제라기 보다는 두개의 상반된 주제가 자기 모순을 인식하는 과정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근대 철학의 두 가지 사조는 칸트의 비판적 관념론에 의해 일차적으로 통일을 보게 된다. 비록 자체의 모순점을 극복해야 하는 자기 수정의 과정을 겪어야 했지만 (불완정성 때문에) 이 두 가지 철학 사조가 근대의 '인식'에 대한 획기적인 바탕이 되어 주었다는 것은 근대의 정신에 대한 커다란 공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