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론 (存在論, 拔萃文)
'나'를 지각하는 정체성은 무엇인가.
개인에게 있어 자신의 '철학'이란 어떤 의미를 갖는가 ?
선형대수학(Linear Algebra)의 기본에 component와 basis, span, dimension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Component는 하나의 basis로 지정되는 vector를 나타내며 basis의 상호 결합에 의해 vector space가 구성된다. 그 과정을 span이라 한다.
예를 들어, 정수의 집합은 사칙연산중 +와 -에 대해 닫혀있다. 즉, 자연수의 각
component는 +와 -를 basis로 하여 구성되는 2차원 공간이다. 상호 component는 자신이 속해 있는 공간의 차원을 이루는 각 축에 의해 상호 결합되어 있다.
이러한 수의 세계에 끼어 있는 소수는 의미가 없다. +와 -의 인식만 갖는 공간에 0.1이라는 개념은 더군다나 -0.3이라는 개념은 전혀 이해될 수 없다. 그러나, 수의 세계에서 그것은 분명히 공간좌표위에 존재한다. 비록 그 누군가가 그것을 인지하기 전까지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을지라도.
누군가 자신의 인식의 차원을 곱셈과 나눗셈으로 확장했을 때, 그것은 비로소 이질적이고 비정상적인 모습에서 또 다른 논리의 세계로의 인식의 확장을 축하해 줄 것이다.
경계를 알 수 없는 모호한 나 자신의 모습은 기실, 끊임없는 삶의 과정을 통해 누군가로부터 배워진 모습의 집합체가 아닌가... 수많은 인식의 차원이 모여 확장되어 발현이 유도된 '자아'라는 새로운 세상이 아닌가.
철학이란, 그렇다면, 그저 단순하게 인지해 오던 1과 2가 1+1=2 라는 인식의 차원에 의해 결합되었다는, 그래서 1.2 라는 낯선 숫자를 발견했을 때 그것이 의미하는 인식의 차원으로 자신의 세상을 확장할 수 있도록 해주는 basis를 말함이 아닌가 ?
그렇게 모호하게, fuzzy하게 존재하는 것이 인간일 것이다.
텅 빈 공간의 전자기적인 척력만으로 자신의 존재를 define하는 것이 물질의 정체라면 물질보다 더 이질적인 인식의 한계는 더더욱 공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수많은 변수에 의해 확률적만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내가, 무엇보다 확실하게 여기 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내가 세상에 남기고있는 모든 것을 이야기하기 위하여, 혹은 지금, 언젠가의 나를 위하여 이 세상에 남겨두고 싶어하는 것이 세 가지 있다. 그 첫째의 것은 지금의 나의 사고 체제를 유도했던, 고등학교때 우연히 나의 머릿속을 스쳐간 단 한마디, '모든것은 존재함으로 존재된다.'로부터 시작되어 내가 논리 체계를 만들고 '존재론'이라 이름 붙였던 나름대로의 철학 체계이다.
유감스러운 것은 이 대부분의 내용이 정리되었던 시절이 고등학교 때로서 그 당시 작성되었던 note가 망실되어 결국 몇가지 메모와 기억을 바탕으로 그 내용의 일부만을 재구성해야 했다는 사실이다.
기술되는 내용이 산만하고 흐름에 일관성이 없는 것에 대한 작은 변명이다.
이 발췌문은 결론이 없다. 이 한마디로 모든 명제는 축약된다.
'모든 존재는 존재하므로써 존재한다.'
나는 존재의 일반적인 성격과 認定의 성격, 즉 소유된 존재와의 특성을 고려하기 위해 존재의 양식을 生命과 비생명(非生命)의 두 부분으로 분리하는 방향을 취했다. 따라서 생명의 부분은 理性을 지닌, 즉 사물의 한面을 전체로 파악할 능력을 지닌 이성체(理性體)로 향해 분화할것이며, 분리된 비생명의 부분은 여기서 분류의 한 단원만을 이룰 것이다.
생명은 생물과 생명으로 분류된다. 생물은 생명의 根幹이 되어주며, 생명은 생물에 근거한다.
이 분야는 생명이 분화되어 나갈 이성체와의 가장 미묘한 관계, 즉 죽음의 해석과 관련되어 분류되었다.
여기서 분류된 생명은 다시 생명 본체와 생명 자아로 나뉜다. 여기서 이성체와 단순 생명체와의 분류가 이루어진다. 생명 본체는 단순히 생물의 존재에 수반되는 공존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생명 본체에 분리된 생명 자아는 다시 생명 자아와 생명 가치로 분류되며 이 생명 자아는 세상을 파악하고 해석하는 바로 자신이며 생명 價値는 생명 자아가 여러가지 상황에서 창출해내는 이른바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업'에 해당하는 것이다. 나는 윤회를 믿는다. 그러나 죽음과 함께 내가 어딘가에서 심판을 받고 다시 그 자신으로 '업'에 따라 순환한다는 다분히 기복적이고 소설적인 구성을 지닌 기존의 윤회론적 설명과는 다르다. 그것은 곧 죽음이라는 과정이 세상에 존재했던 '나'자신의 완전 소멸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자아'에 의해 창출된 '가치'는 물질적, 영적으로 다른 가치 체제에 영향을 끼치며 순환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업'은 따라서 근본적으로 자신의 몫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며 그 이전 그러한 가치를 창조했던 누군가와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생명 자아의 영역에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그것은 생명 자아가 지닌 해석력 때문인데,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면으로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존재시키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으로써 그 대표적인 예가 꿈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외 환상등의 현상이 이에 속한다. 이것을 존재라고 표현해야할까 ?
모든 존재는 두 가지 면의 존재 방식을 갖는다고 前提했다. 그것은 누군가에 속하지 않는 존재로서 아무런 판단체에 의해서도 인정되지 않은 존재이다. 또 하나는 해석체에 의해 해석되는 존재로서 이것은 존재의 자체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해석체의 해석 지향 방향으로 인정되는 해석체 내부의 존재이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세상에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내게 파악되어 있을 뿐이며 대부분 왜곡되어 파악되어 있다는 상황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러한 방향으로 고려해 본다면 꿈이나 환상은 결국 생명 자아의 고유한 판단과 해석의 기능에 의하여 '존재'되는 실체라고 인정될 수 있으며 따라서 이것은 '존재'한다고 인정될 수 있다.
'꿈'을 존재로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꿈이 단순한 '환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實存'될 여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며 세상을 해석하고 있는 '個性體'에 내재되어 있는 불완전성에 기인한 불안정성에 대해 현재의 논점이 맞춰져 있는 까닭이다.
현재 서술되고 있는 '존재론'의 한 부분은 '필요'에 따라 유도되고 있으며 완전한 '존재론'의 구성 요소를 지니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강조한다.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해석체는 불완전하다. 그 까닭은 개성체란 이미 주관을 가지고 전체에서 분리되어 있는 하나의 독자적 존재를 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이 절대자로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갖게된다면 그것은 이미 인간들에게 의하여 한차례 해석된 虛像에 불과하다.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신들은 존재한다. 인간은 자신을 확신하지 못하는 습성이 있다. 그리하여 인간은 자기보다 강한자를 만들어 그에 종속됨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려는 정신적, 물질적인 노력을 반복한다. 그것은 초기의 샤머니즘이나 토템이즘이 그러하며 그것이 인간의 智力의 발전으로 극복될 수 있는 대상으로 바뀜에 따라 '신'에 대한 요구 조건도 높아 졌으며 그것만으로 충족될 수 없는 다른 부분을 위하여 '制度'를 만들어 거기에 종속되며 현재에는 그러한 맥락에서 기계에 종속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점을 인정하며 인정 상태에서 다른 방향을 모색해보는 새로운 방법을 사회 운영및 해석이라는 점에 적용시켜야 할 것이다.
역사란 집단 개성의 시대적 변화 상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진행하며 그것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하나의 표상적인 인물인 '영웅'을 내세운다.
물론 우리 모두의 가치 해석 기준이 다르듯이 '영웅'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양상은 천차만별 일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자기 자신이 조성한 상황이든 그렇지 않든 하나의 대표적인 리더를 뜻한다.
그렇다면 역사의 본체란 무엇인가. 역사의 흐름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대중의 흐름으로 파악된다.
따라서 역사의 본체란 대중이라고 할 수 있는바 이 대중의 모습 자체가 그 수많은 시대를 통하여 변화하지 않았다는 것이 바로 전술된 여러 가지 종속 상황을 반복 재연하는 원인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대중은 역사의 흐름속에 언제나 순간적으로 존재하며 그 순간의 연결은 암시적, 현시적으로 연속적이다. 하나의 대중은 곧바로 必要에 의해 方向性을 갖게되고 그 방향성은 조직체를 구성하게 되며 여기서 대중은 조직체로서 그 성격을 변화하게 된다. 그러나 기저에 깔려있는 조직 내부의 대중성과 혼란의 내적 요인은 여기서 제안되었던 '영웅'에 의해 제어 받게 되며 이것이 보다 큰 영역으로 확대될 때 내재적 요인이 외부의 혼란성과 상승을 일으키며 조직원을 이탈시켜 적어도 일부분에 대중으로의 성격을 유보하게 만드는 것이다.
1987. - 1996. 조 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