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를 위하여...
요즈음 공주병이니 왕자병이니...
심지어 황녀(싹수가 노란...)병까지 뜨고 있는 마당에... 한술 더 떠서
더군다나 황실계(기가 막혀서...)가 횡행한다는 비보를 접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황제'라는 말 보다는 '왕'이라는 말이 많이 쓰인다.
아마도 오랜 기간 제후국이었던 우리의 지난 역사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사실상 황제라는 이름은 함부로 쓰여질 단어가 아니다.
역사를 통해 '황제'의 일반적인 의미와 역사상의 흐름에 대해 알아본다.
황제...
동양권에서 황제라는 명칭을 정식으로 칭한 최초의 사람은 진의 시황제이다.
그에게 있어서 황제는 무소불위한 신에 필적할 존재였으며 오로지 한 사람만의 지배자였다.
그의 호칭이 첫 번째 황제를 뜻하며 뒤를 이은 호해와 마지막 까지, (사실상 마지막 3세는 황제라는 이름을 박탈당했지만...) 2세 3세로 내려가는 연유는 이러한 사실에서 기인한다.
황제란... 첫째, 일반적으로 제왕의 왕이다. 다시 말하자면 주변의 제후국으로 부터 조공을 받는 위치애 있는 상당한 국제성이 가미된 존재이다.
둘째, 황제란 하늘과 통하는 존재이다. 고종이 원구단에서 제사를 지냈던 것, 시간을 거슬러 조광조가 소격서를 철폐하려 했던 일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조 광조의 주장은, 하늘에 제사를 지낼수 있는 군주는 오로지 중극의 황제, 곧 천자인데 제후국인 조선의 왕이 단군에게 제사지낸다는 미명하에 하늘과 통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이 두가지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황제의 계보는 어떻게 될까.
먼저 동양권에서 황제는 일단 중국의 황제를 들수 있다. 중국 황제의 진정한 의미에서의 계보는 선통제 부의로 끝났다고 보아야 한다.
혹은, 부의를 통해 일본으로 그 정통성이 넘어갔다고 주장함도 가능하다. 전통이 살아있고 신과 통하는 존재로서 군주가 유지 되었다는면에 일본 문화의 강점이 숨어 있다.
두 번째, 서양권에서의 황제는... 그 시원을 메소포타미아로 봄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비록 이집트 등의 지배체제가 황제의 명칭에 접근한다고 보여지나, 아직은 초기적인 형태로 보여지며, 페르시아에 이르러 황제의 두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한다고 할수 있다.
이것은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와 크세르크세스... 등을 거쳐 알렉산더에게 패배한 다리우스3세에게까지 이어지는데, 이후 마케도니아의 말로는 그 이름을 보전한다고 할 수 없다.
이후 황제의 명칭은 로마로 이어진다. 사실상, 서양문화계열의 황제는 로마황제에 그 뿌리를 둔다고 할 수 있다.
실질적인 로마의 제권은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전까지로 둘수 있으며, 기독교의 인정으로 '하늘'과의 매개자로서 인간계의 주재자인 황제의 모습은 퇴색되었다고 생각된다.
이 문제는 로마 교황청과의 이분된 지배 체계로 보면 타당할 것이며 사실상 그 이후의 교황과 세속계의 황제간의 관계는 미묘하게 이러한 사실을 반증한다.
로마의 황제는 로마 멸망 이후 신성로마제국으로 합스부르크 왕가로 그 제위가 이관되며, 신성로마제국은 나폴레옹 1세에 의해 붕괴하여 그 제위는 한때 프랑스로 넘어간다.
이후 나폴레옹은 대불동맹에 의해 붕괴하며 그 주축국중의 하나인 독일제국의 빌헬름 1세가 제위를 이어 황제로 등장한다.
개인적인 견해로, 서양 계열의 제위는 독일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빌헬름 2세로 끝났다고 생각된다.
그러하므로 이 외의 다른 국가들, 러시아의 짜아르나 영국의 왕실은 황제보다는 왕이라는 지칭으로 불려야 하며, 사실상 대부분의 경우, 상기한 제위계보 이외의 다른 군주는 왕으로 지칭되고 있다.
세 번째, 남미 계열의 잉카와 마야계의 황제는 나름대로 황제의 면모를 갖추고는 있으나 황제로서의 재배권은 지나치게 독점되어 있어 국제역학적 위치로서의 황제의 조건에는 미흡하다고 여겨진다.
이상에서와 같이, 현재 인류 문화권에는 '황제'라 불릴 정통성은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황제라는 명칭은 위에서 알아 본 바와 같이 자칭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국제관계에 있어서의 중재자이며, 문화의 지배자이고 신과 인간과의 매개자로서 존재한다.
로마의 평화(Fax Romana)와 중국의 단일 왕조가 유지될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위와 같은 조건을 나름대로 충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화가 탄력성을 갖고 미래성을 갖기 위해서는 그 기반이 충실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정통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며, 정통성을 받쳐줄 문화 상류층이 있어야한다.
지금까지 이러한 면은 부정적 시각에서 고려되어 왔다. 역사를 통해 사실상 그것이 착취와 같은 면으로 타락됨은 인간의 속성이라 할 수 있으며 피할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다만, 현재 우리의 입장을 되돌려 보자. 문화 충격에 심약하고 종교적 열의는 혼란에 차 있다.
그리고, 자신의 근거는 제 스스로 지운다.
현재의 영어 교육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돌이켜 보면 황당한 모습에 놀라지 않을수 없다.
창씨 개명에 저항했던 우리가... 이젠 영어로 된 이름으로 불리며 기뻐한다.
영어 교육은 기능에 관한 것이어야 할텐데... 우리는 문화를 잠식당한다.
하긴... 잠식당할 문화도 우리의 의식속엔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이것은 한 예에 불과하다. 문제는 주체적인 모습이거늘, 이것이 없다.
(그런데, 난 주사파는 아니다... -_-; )
이제와 한복을 입자고 주장함은 시대도착적인 발상이다.
이미 청바지문화는 우리의 새로운 체질이 되었다.
그리고, 그 시대는 어쩔수 없었던 우리의 또다른 아픈 과거이다.
다만, 언제까지, 무엇까지 이런식으로 수용해야 할 것인가.
1997.